[기고문] 노관규 시장의 반도체산업 유치...그 허구성

지난 1월 7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관규 순천시장은 전남도청을 방문, 김영록 도지사에게 전남 동부권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을 건의했다. 전남도가 순천 선월과 광양 세풍 일원에 120만 평 규모로 조성 예정인 ‘RE100 미래첨단 국가산단’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자는 구상인 듯하다. 보도 이후 순천이 반도체산업의 최적지임을 강조하는 사회단체 명의의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에 내걸려 시민들의 희망과 기대도 커지고 있다. 플래카드 게첨을 시(市)가 요청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랬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필자 역시 노 시장과 시민들의 바람처럼 순천에 반도체 국가산단이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실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첫째, 국가산단을 조성해 반도체기업들이 입주할 산업용지를 제공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국토교통부의 정책결정 후 개발계획 수립, 환경영향평가, 국가산단 지정 고시, 실시계획 승인, 토지보상, 조성공사, 준공까지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개발계획 수립 후 첫 기업 입주까지 평균 10년, 빠르면 6~7년, 지연되면 15년 이상도 걸린다.
순천시 행정에서 아쉬운 대목은 미래를 내다보는 상상력의 부족이다. 일례로 노 시장은 우주항공산업을 순천의 3대 전략산업의 하나로 육성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관련 기업들이 입주할 산업용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필자가 2022년 순천시장에 출마했을 당시 선월지구 개발계획을 변경, 아파트단지 대신 산업단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머지 않아 아파트는 넘쳐나고 산업용지는 부족해질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 그러나 순천시의 대비는 그동안 너무 안일했다.
둘째, 또 다른 걸림돌은 ‘시간’이다. 지금 AI혁명으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능력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 P5 공장 건설을 재개했고, 용인 남사읍 일원에 235만 평 규모의 반도체 산업단지를 조성하고자 현재 용지보상을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청주공장 확충과 함께 용인 원삼면 일원 126만 평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며, 이미 첫 번째 공장 건설에 착공했다. 미국 마이크론은 뉴욕 메가펩(Mega-Fab) 착공에 이어 일본 히로시마 공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이렇듯 지금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용인에 전력이나 용수 문제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언제 입주가 가능할지도 모를 전남 동부권의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 용인 반도체산업 클러스터를 호남권으로 이전한다 하더라도 전남 동부권보다는 새만금 지역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 당장 산업용지 제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용인 클러스터 이전도 전북 정치권이 먼저 주장했기 때문이다.
셋째, 인력 확보도 쉽지 않은 문제다. 반도체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급인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젊고 유능한 연구인력이 생각하는 거주지역의 남방 한계선은 대체로 대전•세종이다. 카이스트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근무 중인 지인이 있다. 경남 진주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그 지인과 같은 고급 인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지인은 아무리 연봉을 많이 준다 해도 진주까지 내려갈 생각은 없다고 한다. 주변의 연구원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전남도가 조성할 미래첨단 산업단지에 반도체기업을 유치하는 것은 현실성이 낮다. 차라리 여수 LNG산업기지와 연계한 수소산업 관련기업, 포스코(광양제철)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 중인 이차전지산업 관련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지역여건에 더 부합할 것이다. 중앙정부가 공모사업으로 추진 중인 '이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과 연계 추진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순천시민들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노 시장이 내건 공약(公約)인 신대 스타필드 유치, 중앙로 언더패스 조성, 그리고 원도심 르네상스 프로젝트 등이 '빌 공(空)'자 공약(空約)으로 끝난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노 시장이 또 다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의식해 실현가능성 없는 장밋빛 구상을 반복한다면 시민들의 매서운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