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는 전 거래일(8185.29)보다 290.86포인트(3.55%) 오른 8476.15에 마감한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돼 있다.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1104.36)보다 29.56포인트(2.68%) 하락한 1074.80에 거래를 마쳤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502.8원)보다 5.1원 오른 1507.9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해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류모(62)씨는 요즘 아침마다 스마트폰 증권 앱(MTS)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류씨는 은퇴 당시 받은 퇴직금의 상당 부분을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수혜가 기대되는 '코리아 밸류업 ETF'에 과감히 실었다.
남은 자금 역시 국내 반도체 대형주에 분산 투자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는 "과거 은퇴자들은 정기예금 이자나 따박따박 받는 게 최고인 줄 알았지만 지금 같은 활황장에 은행에 돈을 묻어두면 벼락거지가 되는 기분"이라며 "주식 투자로 올린 수익 덕분에 어느덧 세 돌을 향해가는 손녀딸의 생일 선물로 무엇을 사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8000포인트를 넘어 역사적 고점을 연이어 갈아치우는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자본시장의 지형도를 뒤흔드는 새로운 '큰손'이 부상하고 있다.
과거 자산 대부분을 부동산이나 은행 예적금에 묶어두던 고령층 은퇴 세대, 이른바 '실버개미'들이 자금력을 앞세워 증시 체급을 키우는 주역으로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다.
◆퇴직금으로 반도체 베팅…은퇴 자산 공식 깼다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50대 이상 시니어 계층의 주식시장 유입 속도는 젊은 세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자체 고객 데이터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말 대비 5060세대의 신규 계좌 증가 수는 전체 연령대 증가분의 21.3%를 차지했다.
이는 자녀 계좌 개설 붐이 일고 있는 20대 미만(34.3%)에 이어 전 연령대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자산 형성이 본격화되는 30대(11.3%)와 40대(10.6%)는 물론, 트렌드에 민감한 20대(17.9%)의 신규 유입세마저 가볍게 따돌린 셈이다.
이들의 투자 성향은 방어적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미래에셋증권 집계에서 이들은 국내 증시에서는 코스피 시총 절반을 장악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 주식에서는 글로벌 기술 주도주인 테슬라와 엔비디아를 각각 1·2위에 올려두고 있다.
은퇴 이후 생계가 달린 노후 자금을 굴리는 만큼 철저하게 시장 전면에 선 주도주 장세에 올라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증시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고배율 상품 관련 투자에서도 시니어층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지난 27일 기준 금융투자협회가 진행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장 상품 거래 사전교육' 수료자는 총 22만8763명으로 집계됐는데, 이들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9만7460명으로 전체의 42.60%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50대 6만8160명 ▲60대 2만5159명 ▲70대 3658명 ▲80대 이상 483명으로 집계됐는데, 상대적으로 투자 위험이 높은 상품에 대해서도 이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고령층 외에서는 40대가 6만9344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30대(4만5405명), 20대(1만5459명), 미성년자(1095명) 순이었다.
◆"물러설 곳 없다"…시니어 '빚투' 잔액 17조원 육박다만 은퇴 자금의 하방을 단단하게 지지해야 할 시니어 계층이 증권사 대출을 끼고 주식을 사는 '빚투'(신용융자)의 최대 고객으로 올라서면서, 노후 대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의 투자 성향이 과열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러운 지점으로 여겨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상위 10개 증권사의 연령대별 신용융자 잔액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증시의 전체 신용융자 잔액(약 27조2000억 원) 중 50대 이상 시니어 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2.3%에 달했다.
빚을 내 주식을 투자하는 자금 절반 이상이 장년·고령층의 지갑에서 나온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50대의 신용융자 잔액은 8조9762억원(32.9%)으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은퇴가 본격화되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잔액 역시 8조189억 원(29.4%)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1분기 당시 50대와 60대 이상의 신용융자 잔액이 각각 5조원, 3조원대 안팎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1년여 만에 시니어 계층의 빚투 규모가 두 배 가까이 급증한 형국이다.
◆개인 배당금 58% 싹쓸이…탈출구로 떠오른 '주식'자본시장 전문가들은 5060세대의 이 같은 적극적인 행보가 자산 증식과 고정적인 현금 흐름 확보라는 요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예금 금리가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기적인 고배당 수익과 주가 상승 차익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주식시장이 유일한 노후 탈출구로 인식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국내 반도체 대형주들이 수익이 거의 확실해보이는 자산으로 변모하면서 고령층에서도 과감하게 베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위험에 대한 두려움보다 수익에 대한 기대감이 큰 종목들을 담아 노후 자산을 충분히 축적해야겠다는 수요가 폭발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자본시장에서 거두어들이는 결실 역시 압도적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최근 공개한 '지난해 12월 결산 상장법인 배당금 지급 현황'에 따르면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사 배당금 총액은 37조7519억원으로 이 중 개인 주주에게 지급된 배당금(10조1450억원) 가운데 5060세대가 수령한 비율은 무려 58.3%에 달했다.
연령대별 수령 규모를 보면 50대가 3조3789억 원(33.3%)을 가져갔고, 이어 60대가 2조5424억원(25.0%)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70대 이상 고령층도 2조144억원(19.9%)을 수령해, 경제 활동이 왕성한 40대(1조4461억원·14.3%)를 따돌렸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최근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상품 등 변동성이 큰 고배율 상품에 대한 투자에는 신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고령층의 투자는 원금 보존과 안정성이 최우선되어야 하나, 최근 자산 가격 상승기에 소외되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에 레버리지 등 고위험 상품이나 빚투로 이어지는 경향도 적지 않은 상황"이라며 "공격적인 투자는 시장 변동성에 취약해 자칫 노후 기반을 흔들 수 있고, 손실 발생 시 만회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므로 보수적이고 신중한 자산 배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