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군주 단종을 소재로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단종의 실제 이야기를 찾아 읽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서점가에서 관련 도서 판매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시민이 관련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역사 토론 스터디'가 열렸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모임 참석자들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각자의 감상평을 나눈 뒤, 영화에선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은 문종과 금성대군, 선대인 세종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이들은 단종의 발자취를 좇아 다음 모임은 경복궁에서 열기로 했다.
14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조선 6대 왕 단종과 호장 엄흥도의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흥행을 이어가면서 2030 세대의 관심이 역사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로 역사의 희생자로만 다뤄졌던 인물을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마지막 삶을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젊은 층의 높은 관심을 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OTT 채널을 통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몰아 보거나, 역사 '스터디 모임'에 나가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나누는 등 역사에 대한 2030의 높은 관심도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정모씨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단종과 수양대군 당시 시대가 궁금해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더 찾아봤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극을 보다 보면 역사 공부도 함께 돼 더 좋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도 "왕사남에 나오지 않는 다른 역사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궁궐 등 조선시대 유적을 찾아다니며 함께 공부하는 동아리가 있다고 해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극이나 역사 예능 등 관련 콘텐츠 시청 시간 통계를 보면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OTT 서비스의 주요 시청층은 주로 20~30대다.
웨이브(Wavve)가 제공하는 영화 '관상'의 이달 첫째주(2~8일) 총 시청 시간은 전주 대비 54% 급증했다.
관상은 왕사남과 비슷한 시기를 다룬 영화다.
조선시대를 다룬 드라마 '대장금', '허준'은 같은 기간 약 10% 증가했다.
티빙(TVING)이 제공하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예능 '벌거벗은 한국사'는 지난달 평균 시청 시간이 1월 대비 각 300%, 120% 이상 증가했다.
역사 스터디나 유적지 탐방 등을 주제로 한 모임도 증가하고 있다.
지역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당근'에 따르면, 왕사남이 개봉한 지난달 4일부터 이달 12일까지 1달여간 역사 관련 모임의 신규 가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133% 증가했다.
이 기간 20~30대 연령 분포(본인인증 이용자)는 30.7%에서 35.8%로 5.1%포인트 증가했다.
2030세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왕사남 열풍'은 그동안 조연으로만 다뤄진 '역사의 희생자' 단종을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른들의 정치논리 속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종의 안타까운 처지에 젊은 세대가 호응했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사극에서 주로 다뤄진 정사(正史)는 권력자들의 역사, 일종의 보수적 관점"이라며 "젊은 세대들 사이 '역사에서 목소리내지 못한 희생자들이 있을 수 있다'며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그러면서 "상상력을 더한 인물을 재발견·재해석하면서 관객들은 '실제 역사에는 어떻게 기록됐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진실인지' '소외된 내용은 없는지' 궁금증이 생기면서 역사 전반으로 관심이 이어졌을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