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수회장님의 스승님께 보내는 수필 형식의 편지 ‘
파아란 5월 하늘, 그리고 교정
존경하는 스승님,
햇살이 따사로운 5월의 파아란 하늘 아래
연둣빛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면
어렴풋이 조치원 대동초등학교의 교정이 떠오릅니다.
교정 한편에 우뚝 서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와 넓은 운동장,
아침 조회시간이면 운동장 가득 울려 퍼지던 아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시던 스승님의 모습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 평범해 보였던 하루하루가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요즘은 안전사고 문제 등으로 인해
소풍도 거의 가지 않고 운동회도 예전처럼 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학교 풍경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어도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와 민원 문제 때문에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소풍과 수학여행이
아이들에게 세상을 배우는 또 하나의 교실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사고 하나에도
모든 책임이 선생님 개인에게 집중되는 현실 속에서
선생님들께서 많은 부담과 두려움을 안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 책임과 희생이 오롯이 선생님 한 사람에게만 지워지는 현실은
분명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부모들은
“왜 멀리 가서 아이를 멀미하게 하느냐”는 민원을 제기하고,
체험학습 사진 속 아이 표정 하나까지 문제 삼는 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접하며
문득 어린 시절 아무 걱정 없이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떠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의 선생님들께서는
혹시 아이들이 다칠까 끝까지 살펴주시면서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추억과 경험을 남겨 주기 위해 애써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평범했던 운동회와 소풍, 수학여행의 시간들 역시
모두 선생님들의 사랑과 헌신 위에 존재했던 것임을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웃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친구를 사귀고 서로를 배려하는 법을 배우며 세상을 알아가던
또 하나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잠깐의 쉬는 시간이 되면
우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운동장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누군가는 공을 차며 운동장을 가로질렀고,
누군가는 술래잡기를 하며 먼지가 일도록 뛰어다녔습니다.
또 누군가는 운동장 한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여자아이들을 장난스럽게 놀리며 깔깔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여자아이들은 화가 난 척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장난이었지만,
그 안에는 친구들과 함께 웃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던
순수한 시절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학원 시간표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달랐습니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이 놀이터였고,
친구들과 부딪히며 뛰어 노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점심시간이면 교실 안에는 도시락 반찬 냄새가 가득 퍼졌습니다.
누군가는 김치 하나만 있어도 맛있게 밥을 먹었고,
친구들은 서로의 도시락 반찬을 바꾸어 먹으며 웃곤 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 끝까지 달려가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는지 시합을 하기도 했고,
운동장 모래 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구슬치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서로의 마음만큼은 넉넉했습니다.
많이 가진 친구가 특별히 더 행복했던 것도 아니었고,
가진 것이 적다고 외로웠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뛰어 놀며
서로를 자연스럽게 품어 주던 마음이 있었기에
학교는 늘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가 오는 날도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놀이의 시간이었습니다.
빗소리가 교실 창문을 두드리다가
잠시 비가 멎을 듯하면
저를 포함한 개구쟁이 친구들은 곧장 운동장 끝에 있던 그네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네 아래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우리는 그 물을 발끝으로 힘껏 차올리며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아이들처럼 웃었습니다.
그네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발밑에서는 하얀 물보라가 퍼졌고,
반바지와 검정고무신이 흠뻑 젖는 줄도 모른 채
그저 신나게 웃고 또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 시절에는 풍족한 장난감도 없었고, 넉넉한 생활도 아니었지만
왜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는지 새삼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아마도 그것은
늘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시던 스승님이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그리고 어느 겨울날의 기억은
지금도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 겨울에 신을 양말이 미처 마르지 않아
저는 결국 맨발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 추위를 잘 견뎌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찬 바람 속을 걸어가면서도
마냥 학교에 간다는 생각에
발이 시리다는 느낌조차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선 순간
친구들이 추위에 홍당무처럼 붉게 변한 채
감각이 없어진 제 발을 바라보았습니다.
“야, 양말 안 신었네?”
친구들은 놀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니
곧바로 교실 한쪽 난로 가까운 곳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여기 앉아.”
“여기가 제일 따뜻해.”
누군가는 자리를 조금씩 비켜 주었고,
또 누군가는 난로 쪽으로 몸을 돌려
따뜻한 기운이 제 쪽으로 오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작고 소박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따뜻함은
난로에서 나온 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의 마음이
제 어린 가슴을 먼저 데워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제가 쓴 장편시 ‘풀잎의 노래’ 속에도
그 겨울날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살을 애는 추위
발의 감각마저 잃어버린 어느 겨울
따뜻한 난로가로 나를 이끌던 옛 친구들”
어린 마음에도
친구들의 배려와 정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서로를 품어 주며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도시락 반찬이 없으면 친구들이 반찬을 나누어 주었고,
연필이 짧아지면 함께 깎아 쓰기도 했습니다.
운동회 날 넘어지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 주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겨울날의 교실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의 중심에는
항상 제자들을 사랑으로 품어 주시던
스승님의 가르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스승님께서는
단순히 교과서 속 지식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정직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늘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운동회 날이면 아이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 가며 응원해 주셨고,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조용히 등을 토닥여 주셨습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엄하게 꾸짖으셨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마음에도 스승님의 꾸중은
두려움보다는 따뜻함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속에 사람답게 살아가는 씨앗을 심어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문득 제가 오래전 적었던 시 ‘밤하늘에 핀 꽃’의 한 장면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 옛날,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우리는 여느 아이들처럼 꿈도 많았다.”
그 시절 우리들은 정말 꿈이 많았습니다.
죽림동 안동네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말랭이’ 언덕에 올라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별똥별이 언제 나타날까”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혹시라도 별똥별을 놓칠세라
숨을 죽인 채 밤하늘을 바라보던 개구쟁이들의 눈빛은
세상 무엇보다도 맑고 순수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별똥별 하나가 긴 꼬리를 그으며 지나가면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터뜨리며 좋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밤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모습은
작은 희망 하나에도 기뻐할 줄 알았던
순수한 동심 그 자체였습니다.
별 하나에도 마음 설레던 그 시절의 순수함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삶을 견디게 하는 따뜻한 힘으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수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찾지 못해 외로워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한 사람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학교폭력은 점점 더 교묘하고 잔혹해지고 있으며,
사이버 공간 속 폭력은 어린 학생들의 마음까지 깊게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한 청소년 도박 문제까지 빠르게 확산되면서
미래세대의 가치관과 정신 건강마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아픔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처를 쉽게 주고받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으며,
불법 온라인 도박 또한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짧은 호기심으로 시작된 도박이
빚과 범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이어지는 현실을 바라볼 때마다
어른 세대로서 마음 한켠이 무겁습니다.
짧은 말 한마디와 댓글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법과 원칙이 바로 서야 할 자리에서조차
불법과 편법이 반복되고,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속에서도
정작 힘없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반짝이던 별들은
세월 속에서 현실의 무게와 마주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작은 별빛 하나가 '희망'으로 남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요즘 세대를 바라보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예민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마음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난로가에 자리를 내어 주던 친구들처럼,
넘어진 친구를 함께 일으켜 세워 주던 운동회 날처럼,
비에 젖은 검정고무신을 보며 함께 웃던 그 시절처럼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라져서는 안 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세대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반드시 풍족함 속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행복은
많은 것을 가졌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웃을 수 있을 때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비에 젖은 검정고무신을 보며 친구들과 함께 웃던 순간들,
운동회 날 목이 쉬도록 응원하던 시간들,
난로가에 둘러앉아 서로의 손을 녹여 주던 그 평범한 순간들이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서로 함께 웃고, 함께 뛰놀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 속에서
진짜 행복은 자라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들었던 따뜻한 한마디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저 역시 수많은 굴곡과 어려움을 지나왔습니다.
때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긴 시간 방황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스승님께 들었던 말씀들이
제 마음을 다시 붙잡아 주었습니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 말씀들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고,
어두운 길 위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비춰 주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 또한
우리 사회의 미래세대가
안전한 환경 속에서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없는 건강한 학교,
선생님들이 존중받는 교육환경,
그리고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승을 존경하고 부모님께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친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자신의 자유만큼 다른 사람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마음이 사라질 때
공동체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교육은 단순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묵묵히 학생들을 지켜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언젠가 다시 파아란 5월 하늘 아래
대동초등학교 교정을 천천히 걸어볼 수 있다면,
저는 아마도 오래 전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스승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를 지나며 운동장을 바라보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니던 개구쟁이들의 모습과
빗물 고인 운동장 위를 달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날 것만 같습니다.
지금도 마음속에는
빗물 고인 운동장 위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추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어 주시던 스승님이 계십니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세상도 참 많이 변했지만,
어린 시절 스승님께 배웠던 따뜻한 마음과 사람에 대한 믿음만은
제 삶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힘겨운 순간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도
길가에 이름 모를 풀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바라보면
문득 제가 쓴 장편시 ‘풀잎의 노래’ 마지막 구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길가에 돋아난 이름 모를 풀잎 하나 입에 물고
나는, 풀잎이 전해주는 선율을 따라
노래를 부르리라.
세상은 외롭지 않다고…”
돌이켜 보면
그 노래의 시작에도 결국 스승님의 가르침과 사랑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50여 년 전,
철없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시고
삶의 방향을 밝혀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멀리서 마음으로 인사 올림을 헤아려 주시고,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2026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제자 이치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