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때로 국경을 지우고, 그 남겨진 자리에는 오직 정교하게 건축된 소리의 진실만이 남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태어나 팝의 본고장 스웨덴의 정교함을 흡수하며 자란 한 음악가는, 이제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가장 역동적인 중심지에 닻을 내렸다. 그는 단순한 이방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의 질서를 융합해 새로운 보편성을 빚어내는 소리의 조율사다. 스웨덴계 미국 글로벌 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알렉스 칼슨(33·Alex Karlsson)의 궤적은 곧 K-팝이 세계를 매혹해 온 과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위 아 불릿프루프: 디 이터널(We Are Bulletproof: The Eternal)', 슈퍼엠(SuperM)의 '호랑이(Tiger Inside)', 엔하이픈(ENHYPEN)의 '피버(Fever)', 에이티즈(ATEEZ)의 '바운시(BOUNCY)'와 '워크(WORK)',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의 '루저 러버(LO$ER=LO♡ER)' 등 현재 K-팝을 대표하는 서사를 직조해 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화려한 시각적 퍼포먼스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듯 보이는 K-팝 산업 이면에서, 칼슨은 오히려 '순수한 작곡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에게 K-팝은 단순히 특정한 장르나 스타일이 아니다. 엄격한 수련의 시간, 정교한 팝의 구조,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장르의 융합이 하나의 완벽한 세계관으로 직조되는 '창조적 방법론'이다. 음악 외적인 요소가 곡의 운명을 결정짓곤 하는 현대 음악 시장의 피로감 속에서, 그는 K-팝을 "오직 곡의 퀄리티와 진정한 프로듀서들의 순수한 역량만으로 경쟁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라고 해석한다. 이는 대중음악이라는 그릇 안에 예술가의 치열한 정신이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찰이다.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전례 없는 규모로 열리는 글로벌 음악 축제 '페트 드 라 뮈지크+ 2026(Fête de la Musique+ 2026, 이하 FDM+)'는 이러한 칼슨의 철학을 들여다보기에 가장 적합한 무대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일환으로 리웨이뮤직앤미디어가 주관해 8일 서울 마포구 틸라 그라운드에서 열린 이번 콘퍼런스에서 그는 'K-팝에서 글로벌 팝으로: 경계 없는 음악을 다시 생각하다' 세션에 정효원 앰플리파이드 대표, 싱어송라이터 겸 베이시스트 아미나타 가디아가, 타라파 사흘룰 뮤턴트 닌자 및 키드 카타나 레이블 대표, 정창윤(앤드뉴) 살폿 뮤직 그룹 대표 등과 함께 연사로 나섰다.
시각적 화려함에 가려진 오디오 본연의 힘, 단기적인 소비를 넘어 오랜 시간 사람들의 내면을 맴돌 '이지 리스닝'의 가치,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지운 자리에 피어나는 진정한 보편의 팝. 세션 직후 국내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칼슨은 K-팝이 나아가야 할 미학적 지향점과 음악의 본질에 대해 깊고 단단한 언어로 답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세션에서 K-팝이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특별한 비법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한국 대중음악이 가진 이 비법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그 비법은 전통적인 팝을 한층 더 발전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J-팝이 먼저 트레이닝 시설과 팬덤 문화를 도입했지만 자국 시장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K-팝은 국제 무대로 나아가는 창의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치열한 멤버 선발, 긴 트레이닝과 계약 기간 덕분에 일관된 콘셉트를 깊이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수출을 목적으로 기획됐다는 점이 K-팝이 엄청난 우위를 점하게 된 이유입니다."
-K-팝 작곡에 발을 들여놓은 지 꽤 되셨습니다. 처음 K-팝을 어떻게 알게 되셨으며 어떤 매력에 이끌리셨나요?
"첫 만남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습니다. 유튜브 조회수가 겨우 3만 회였을 때 이를 발견했죠. 이후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Fantastic Baby)'를 보고 무척 멋지다고 생각했고, 특히 슈퍼주니어의 화음 쌓기와 음악성에 넋을 잃었습니다. 반드시 이들과 작업해야겠다고 다짐했고, 2013년 SM엔터테인먼트와 연락이 닿아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과 작업하는 멋진 경험을 했습니다."
알렉스 칼슨(Alex Karlsson). (사진 = 리웨이뮤직앤미디어 제공)
-SM과 YG 등 기획사마다 추구하는 장르가 다른데, 이 모든 것을 K-팝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보시나요?
"어떤 형태를 취하든 전부 K-팝입니다. 제가 정의하는 K-팝은 아티스트를 론칭하는 과정이자 방법론입니다. SM의 일렉트로 팝과 R&B의 결합이나 YG의 힙합 집중 등 각기 다른 사운드를 사용하지만, K-팝의 본질은 장르 융합에 있습니다. 엄청난 트레이닝, 큰 예산, 화려한 뮤직비디오, 세련된 팝 구조를 갖춰 국제적으로 론칭된다면 그 안에서 무엇을 융합하든 K-팝입니다."
-초창기 K-팝은 스웨덴 중심의 유럽 스타일과 미국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스칸디나비아, 미국, 한국 현지 프로듀서들의 사운드가 확연히 구분됐지만, 지금은 너무 글로벌화돼 그런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제는 서로의 장르에서 달인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모두가 국경을 넘어 다양한 장르에 통달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으며, K-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초기에 스웨덴 사람들은 K-팝을 경계했지만, 지금은 스웨덴의 성공한 작곡가를 꼽을 때 K-팝 작곡가들이 거론됩니다. 인식이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초기의 경계심은 미국 메이저 아티스트와의 작업을 최고로 치던 기존 업계의 틀 때문이었습니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노래를 듣는 내내 흥미를 유지하고 곡이 끝난 후에도 계속 흥얼거리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이 철학이 현재의 K-팝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음악계는 작곡 자체보다 인맥 등 외적 요소가 곡 배정에 더 중요해진 반면, K-팝은 진정한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순수하게 곡의 퀄리티로 경쟁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로 남았습니다. 이 점이 스웨덴 음악계의 인식을 바꿨습니다."
-10년 넘게 작업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K-팝 프로젝트는 무엇이며, 아티스트들의 역량이 발전했다고 느끼시나요?
"SM의 연합 그룹 슈퍼엠(NCT, 웨이션브이, 샤이니, 엑소 멤버로 구성) 작업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호랑이'라는 곡의 높은 고음과 어려운 랩을 기대 이상으로 완벽히 소화해 내 충격을 받았습니다. 최근 K-팝 밴드들은 춤과 보컬 모두 진일보했으며, 특히 세븐틴처럼 언어 장벽을 넘어 현대적인 도구로 팬들과 유사 사회적 관계를 맺고 강력하게 소통하는 능력이 눈에 띄게 발전했습니다."
알렉스 칼슨(Alex Karlsson). (사진 = 리웨이뮤직앤미디어 제공)
-슈퍼엠의 '호랑이'는 한국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작곡 당시 가사에 대한 이해나 의도적인 스타일 변화가 있었나요?
"랩, 멜로디, 화음 등 모든 파트를 온전히 혼자 작곡했습니다. 정교한 곡 구조 안에 으르렁거리는 소리 등 원초적인 요소를 넣어 이건 그저 재미있는 곡이라는 반전을 주고 싶었습니다. 원래 제가 쓴 영어 가사에서는 동물의 맹렬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자를 주제로 삼았으나, 한국 작사가가 이를 호랑이로 바꾸고 내면의 강함이라는 메시지까지 더하며 곡이 완벽해졌습니다. 제 커리어에 큰 기회를 열어준, 그 어떤 곡보다 고마운 노래입니다."
-자신이 작곡한 곡 외에 가장 좋아하는 K-팝 노래와, 해외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을 K-팝 곡을 꼽는다면요?
"뉴진스의 '슈퍼 샤이'는 서양에서는 시도하지 않을 독특한 느낌을 주면서도 맥스 마틴 스타일의 팝적 요소를 완벽히 갖췄습니다. 7도음과 9도음이 들어간 복잡한 코드를 쓰면서도 국제적인 라디오 히트를 기록했죠. 작곡가로서 저는 항상 카탈로그를 준비합니다. 문화적 흐름을 예측해 컨트리 팝, 2000년대 일렉트로 웨이브 등 여러 장르의 곡을 만들어 기획사에 제안하는데, '슈퍼 샤이'는 이런 트렌드를 정말 영리하게 짚어낸 곡입니다."
-'슈퍼 샤이'의 성공 요인과, K-팝 시스템에서 한 가지 바꾸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슈퍼샤이'는 버스(verse·벌스)와 코러스 전반에 걸쳐 반복을 아주 매끄럽게 배치해 K-팝의 복잡함 속에서도 지루함을 없앴습니다. K-팝 산업에서 바꾸고 싶은 점은 보이그룹 음악의 방향성입니다. 실물 굿즈 판매 등 단기적인 수익에 치중해 시각적 퍼포먼스 위주의 곡만 내다보니 장기적인 카탈로그 구축이 어렵습니다. 글로벌 히트곡인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나 '버터(Butter)'처럼 강력한 훅을 바탕으로 차에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친화적인 이지 리스닝 곡이 필요합니다."
-K-팝 아티스트들의 음악성에 대한 갈증과 향후 음악성 위주의 글로벌 성공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악성에 대한 갈망은 확실히 존재하며, 이것이 미국 시장 성공의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스트리밍이 대세라고 생각하지만 미국 음악 소비의 68%는 여전히 라디오가 차지하며 스트리밍은 30% 수준입니다. 진짜 현실은 여전히 시각적 요소가 배제된 오디오 중심의 시장에 있습니다. 시각적 퍼포먼스에만 그치지 않고 오디오 자체의 음악성에 더 깊이 기대는 노래를 만들어야 진정한 세계적 성공이 가능합니다."